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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골방살이

대중이 있는 곳이나 큰 무대에 나가 발표를 할 때 얼굴은 화끈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찻집이나 회식에 가면 윗사람이 앉은 중앙을 피해 항상 눈에 안 띄는 구석자리에 앉는다.

누가 시비를 걸어 올 때는 나도 한번 멋지게 붙어보고 싶은데 비장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부르르 떨리며 벌써 말부터 더듬는다.


이런 증상을 경험했거나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람들에게 이글은 적절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서 늘 골방에 살았던 나의 유년기가 떠오른다. 조부가 사람들에게 부산스럽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사교적이셨던 까닭에 집안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대고 심지어는 몇 달씩 묵어가는 이도 있었다.


고향집에 찾아오는 사람마다 내게 한마디씩 했다. 물론 ’참하고 예쁘다.‘는 등 칭찬이나 덕담이었다. 이는 손님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 자식들을 보듬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알 턱이 없는 어린 나에게는 왠지 자신이 진열대에 놓인 물건인양 그들에게 세세히 관찰당하는 기분이 몹시 싫어 밖에서 손님이 오는 떠들썩한 소리가 나면 방에서 놀다가 얼른 골방에 숨어 버렸다.


손님이 가기를 기다리다가 잠들어 가족들이 온 마을을 찾게 하는 소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골방은 나만의 안식처였다. 이곳에 있으면 누가 상품을 평가하듯 나를 말하지 않을 테니 우선 안심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는 무엇이든 맘 놓고 해 볼 수 있었다. 남 앞에서 말을 또박또박하는 연습도 했고 거울을 보며 당당한 표정도 지어보았다.


때론 ‘어른이 되면 어떻게 변할까? 무엇이 되어야 하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등 제법 철학적인 고민도 해보았다. 또한 골방에 숨어있으면 생기는 이익이 많았다. 그 안에 가만히 있노라면 할머님의 오동나무 장롱에선 가루분과 나무냄새가 섞인 정겨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후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끙끙거리며 낯선 냄새를 추적하다 더러는 할머니가 깊숙이 숨겨놓은 사탕과 과자도 찾아내는 횡재도 생겼다. 나중에 손자손녀들에게 주시려고 감춰놓은 것이겠지만.

그리고 한참 만에 골방에서 혼자 놀다나온 나를 보고 조부모는 “쟤가 몸이 안 좋은지 얼굴이 핼쓱하다.”면서 맛있는 것을 갖다 주셨다.

그러면 이때가 기회다 싶어 내편인 듯싶은 조부모에게 형제들과 싸운 일, 부모에게 서운한 사건 등 이런저런 고자질을 하니 조부께서는 너털웃음을 지으시면서 ‘평소에 말이 없어도 쟨 내명(內明)한 아이야.’ 라고 호평하셨다.


그런데 골방에 앉아 혼자 놀던 버릇 때문일까. 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고 유난히 겁이 많다보니 첫 사회생활의 시작인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그 당시 학교 화장실의 구조가 한쪽은 남자애들 소변보는 곳으로 길게 개방되었고, 문이 있는 다른 쪽은 변기가 크고 넓으며 만만치 않은 높이로 추측할 때 그 속이 꽤 깊을 것 같았다.


무섭게 보이는 그 변기에서 자칫 헛발을 디뎌 속으로 빠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 때문에 그 재래식 화장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용무가 아주 다급한 경우에는, 화장실에 있던 모든 남자애들이 쉬는 시간이 끝나 교실로 들어가고 나면 몰래 남자변기를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왔다고 선생님에게 혼난 적도 많았는데 화장실 때문에 늦었다고 밝힐 수가 없었다.


유난했던 화장실 공포는 타지로 전근하신 부친을 따라서 전학을 가고 나서야 떨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 학교 화장실 구조는 별로 무섭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포의 장소였던 화장실은 오히려 남들에게서 자신의 표정과 기분을 감추고 싶을 때 적합한 공간이 되었다. 어릴 적 골방을 차츰 화장실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유년기와 악몽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후로도 겁 많음에 수줍음은 여전했지만 학급임원이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조금씩 씩씩하고 활달해졌다. 물론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어 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기 때문이다. 이제는 골방을 찾거나 화장실에 숨는 일은 즐겨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어릴 적 조부가 내게 한 ‘내명(內明)한 아이’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내 안의 밝음을 확산(擴散)시키면서 자신이 외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데에 믿음을 갖게 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경(易經)의 음양론에서는 ‘음극생양(陰極生陽) 즉, 음이 극에 다다르면 양이 생긴다.’고 한다. 너무 소심하거나 수줍음 때문에 고민이 된다면 한번쯤 자기혼자만의 ‘골방’을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장 음적인 그곳에서 스스로 밝음에 대한 최면(催眠)을 걸고 반복적으로 노력을 하면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가 그러하듯 어느새 양(陽)적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양론에 의하여 너무 양적이면 경거망동(輕擧妄動)하거나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되기 쉽고, 너무 음적이면 자신의 기량발휘가 어렵고 자칫 우울증에도 빠질 수 있으므로 음과 양이 적절히 조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열은 열로 다스리듯이(以熱治熱)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자신을 차분하게 직시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실랑이를 할 때 차츰 공포의 대상이었던 무대와 군중속이 골방보다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수영  visionlks@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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