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매너는 에티켓과 다르다

 프랑스어인 에티켓(Etiquette)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예의범절’이라는 뜻 이외에 ‘명찰’이나 ‘꼬리표’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 에티켓이라는 말은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살던 베르사이유(Versaille) 궁전에 귀족들이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인 티켓(Ticket)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사(스코틀랜드인)가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통로를 안내하는 ‘푯말’을 설치했는데, 이 푯말의 이름을 ‘에티켓’이라고 불렀다는데서 나왔다는 주장으로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주장은 당시 l_14.jpg 귀족들이 이 에티켓이라 불린 궁정출입증을 통해서 부르주아지와의 신분상의 차이를 시도하고 싶어 해, 이 출입증이 당시 ‘귀족 신분’을 나타내는 일종의 꼬리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출입증의 뒷면에 귀족으로서 궁내에서 지켜야할 질서나 규칙등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우리가 상품을 고를 때 상표를 보는 것처럼, 한 사람의 평가 또한 겉으로 들어나는 예절과 친절도,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 등으로 평가하게 되면서 에티켓이 ‘예의범절’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두 번째 주장을 이해하려면 루이 14세와 베르사이유 궁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단순히 ‘정원 출입금지’라는 뜻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정원’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넓게 해석하여 ‘예의범절’이란 의미로 오늘날 확대된 것이다.

 지금도 프랑스어로는 etiquette하면 ‘예의범절’과 ‘꼬리표’의 두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영어에서는 표를 ticket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독일어로는 꼬리표를 etikett, 예의범절은 etikette로 구별해서 사용한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귀족들은 몰락하고 새로운 부르주아지들이 중심세력이 된다. 이 때 베르사이유의 에티켓은 영국으로 넘어간다. f_eti.jpg 여기서 영국의 젠틀맨(gentleman)이 나온다. 프랑스의 ‘오네뜨 옴(honnete homme-말 그대로 하면 정직한 사람)’은 출신 가문이 좋고, 궁정 출입이 허용되고 궁정의 분위기를 잘 아는 사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신사는 집안의 가문을 떠나 그 사람의 도덕적, 교양적 수준을 중요시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중심의 궁정 스타일의 에티켓이 붕괴되고, 런던으로 넘어가 새로운 에티켓이 꽃을 피게 된 것이다. 그 때가 빅토리아 여왕(1837-1901) 시대였다. 당시 영국은 영토를 세계로 넓혀 국력이 매우 신장한 때였다. 그 때 새롭게 형성된 상류사회 계급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련된 몸가짐과 고상함을 보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고 에티켓을 만들어 내고 강화했던 것이다.

 서양의 예절이 주로 외면적인 측면을 중시해 왔다면, 동양의 예법은 내면적 진실성에 더 많은 가치를 두어 왔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을 즉석에서 약간의 돈으로라도 표현하고자하는 데서 출발하여 팁을 주는 것이 서양의 예절이다. 또한 서양의 가정에서는 부부 사이라도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즉시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라며 사랑의 표현에 인색하다.
 
 그러나 동양에도 매우 엄격한 예법이 존재했고, 그 역사도 서양에 비해 훨씬 더 길다. 서양의 에티켓이 17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면, 동양의 예절은 공자로부터 시작되니 서양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삼강오륜이 존재하였으며, ‘예(禮)가 없다면 개인이나 가정은 물론 국가도 바로 설 수 없다’고 하였다. 동양에서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 ‘예’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사이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그 규칙을 지킴으로써 사회가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실천되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경’이라고 부른다. 이 ‘경’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매너이다. 매너인 배려와 존중이 스며 있지 않은 ‘예’는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17세기에 좋은 매너를 가진 사람을 프랑스에서는 ‘오네뜨 옴’, 그 후 영국에서는 ‘젠틀맨’이라고 불렀듯이, 동양에서는 그들을 인간의 기본적인 법도인 ‘예’와 ‘경’을 잘 지키는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다.

‘예’나 에티켓이라는 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그것들은 사회생활에 필요로 하고 있는 관행, 관습을 형식화하여, 이를 지킴으로써 사회생활이 원만하게 운영되며, 개인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들은 하나의 사회적 불문율로써 행동 기준인 것이다. 반면 매너는 에티켓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에티켓은 형식이며, 매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인사 한다’는 것은 에티켓이며, 그 인사를 경망하게 하느냐 공손하게 하느냐는 매너 문제이다. 따라서 아무리 에티켓에 부합하는 행동이라 해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품위 있는 인간으로 대접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에티켓과 매너라는 용어는 예의라는 의미로 서로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은 에티켓이 없어’라고 하지만, ‘에티켓이 나쁘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매너가 나쁘다’라고는 말한다. 또 ‘매너가 없다’라고 말 할 때는 ‘매너가 나쁘다’라는 뜻으로 쓰여 에티켓은 ‘있다, 없다’로 예의가 있고 없음을 말하게 된다. 반면, 매너는 나쁜 매너, 좋은 매너로 예의를 질적으로 평가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에티켓은 형식이라면, 매너는 방법인 것이다.

 매너는 에티켓과 달리 복잡한 행동양식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 아닌 타인을 조금 더 배려하고 칭찬하면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생활 속에, 매너는 고급레스토랑이나 파티 장에서나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몸에 배게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너를 습관화 한다는 일은 삭막한 이 사회에 인간미를 불어 넣는 일이다.  예를 들면,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한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은 매너라도 그 속에 상대방을 존중하는 진실한 마음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 가치는 반감될뿐더러 때로는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물론 스치고 지나가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겠는가? 라며 반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매너나 가식적이 매너는 본능적인 느낌으로 알아챌 수 있으며 또한 이렇게 시작된 인간관계는 오래 지속되지도 못한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보다 매너가 좋은 사람이 진정한 상류층이다. 아무리 직책이나 권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는 마음, 나로 인하여 타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존경을 얻기는커녕 사람들에게 ‘왕따’ 당할 것이다. 매너의 기본 정신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인 만큼 내 생각을 고집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이다.



박한표  hppark@dmcnew.kr

<저작권자 © 다문화공감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한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