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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친구 2

두려움을 돌파하면 그것과 친해진다.
또한 평생 곁에 둘 수도 있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영화계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상을 분야별로 많이 수상했던 영화(제목이 아마 ‘잔다르크’ 였던 것 같다.)를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러갔다. 그때까지 영화 관람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너무 빨리 바뀌는 화면과 자막을 신속하게 읽지 못해 눈을 위아래로 분주하게 옮기는 동안 어느새 영화는 끝났고 어리둥절한 채 극장을 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음날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지목하더니 “넌 조용하고 차분해서 영화내용을 잘 이해했을 거야. 그럼 줄거리를 좀 말해볼래? “ 라고 불쑥 질문을 하셨다. 아, 이건 내게 너무 혹독한 주문이었다.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선생님, 저는 화면만 읽었는데요. “ 라고 대답했더니 교실 안이 이내 폭소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 자막을 제대로 못 읽었어요.“라고 차분히 대답한다는 게 그만 말이 잘못 튀어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수치심으로 얼굴이 빨개져서 멍하니 서있었더니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내 마음을 선생님은 아시는지, “쟨 모범생이라서 영화는 많이 안본 모양이구나. 그렇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저렇게 임기응변(臨機應變)에도 강해야 한다.”며 오히려 위로 섞인 말씀을 해주셨다.
 
 그 사건 이후로 중학교 시절 난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만 하는 엉뚱한 아이’로 불려졌다. 그렇다. 난 선생님의 관심과 칭찬을 받는 게 좋아서 연습장이 까맣게 되고 바닥이 구멍이 나도록 소위 ‘무식하게’ 학교공부만 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날의 에피소드가 잊을 없는 수치감으로 각인되었다.


 사실 그때까지 교과서와 참고서만 끼고 살던 나는 만화책은커녕 동화책, 위인전을 겨우 한두 권 읽은 게 전부였기에 낯선 화면을 보며 자막을 읽고 이해하기 벅찬 건 무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 후 고등학교 입시를 무난하게 치룬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는 소위 명작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세로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진 두꺼운 책을 읽어내기는 어지간한 참을성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방학 동안 다른 공부 제쳐두고 큰맘 먹고 읽은 책이 겨우 두어 권 정도였다. 아무래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게 문제였기에 비장한 각오로 ‘속독훈련’이란 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겨우 100페이지 남짓 되는 그 책도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말았다.
 
 사춘기 때는 문학소녀가 환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난 당시 학생들의 로망인 문학소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독서량도 빈약하거니와 책읽기에 장애가 있으니 큰 걱정이었다. 어떻게든 ‘독서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불타고 있었다. 우선 두껍거나 상, 중, 하편으로 된 책은 제쳐두고 글자 수가 적은 시집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때 읽은 시집이 족히 20권은 되는 것 같다. 비록 얇은 책이지만 20권이나 읽어내었다는데 스스로 대견해져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문학소녀의 대열에 속하기 위해 당당히 문학동호회에 가입했다.
 
 학생의 본업인 공부보다는 시나 수필의 습작을 하고 문학의 밤 행사에 작품발표도 하고 시화전에 출품을 하는 등 소위 책과 문학에 몰입하다보니 자연히 성적은 뒷전이었다. 어찌하여 학업과 취미활동 두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려운 걸까? 한 가지에만 외골수로 빠지는 성격 때문인지 한번 추락한 성적은 쉽게 복구되지 않았고 그때부터는 ‘공부만 하는 엉뚱한 아이’가 아니라 ‘공부에는 관심 없고 엉뚱한 짓 하는 아이’로 처지가 역전되었다.
 
 학창시절 공부 안한 게 비단 책이나 문학 때문만이 아니었겠지만, 학업소홀이라는 기회비용을 치르고 문학소녀대열에 끼여 책과 친해지고 습작활동을 하면서 중학교 시절 변변하게 읽은 책이 없고 읽기능력이 떨어져 실추된 체면과 상처받은 자존심은 서서히 회복한 셈이다.


 가끔은 '학교 다닐 때 문학에 빠지는 대신 공부에 매진했더라면... ‘하고 회한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문학에 눈뜨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오로지 입시공부만 했더라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때 더 많은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의 다채로운 맛을 음미하며, 다양성을 이해하고, 관조하는 여유는 갖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덧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도 하면서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고 세파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며 살다 보니 독서에 대한 처음의 열기도 식어 기껏해야 일 년에 책을 한두 권 읽으면 다행인 정도였다.  그러다가 삶이 고단하고 버거울 때는 문득 옛날처럼 책에 빠져서 지내던 시절이 그리워졌지만 머릿속이 뒤숭숭하니 책은 냉큼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자신과 허물없이 고통을 함께할 무엇인가를 절실히 찾고 싶었는데 그런 말벗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사람에게 말로서 푸는 것은 당장은 시원할 수 있겠지만 자칫하면 허탈함을 남기기 쉽다.
 
 그래서 학창시절의 습관대로 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시는 치유의 힘이 있고 숨은 열정을 되살려 준다. 어른이 되어 읽는 시는 더 깊고 풍부한 감흥이 있다. 또한 평이한 내용의 수필집은 분량도 많지 않아 단숨에 한권을 읽을 수 있었다. 점점 읽는 속도가 빨라지니 책을 너무 더디게 읽는 게 여태껏 열등감으로 작용해온 내게 대단한 성취감을 주었다.


 무슨 일이든 하면 할수록 가속이 붙는 모양이다. 처음 일 년에 한두 권이던 독서량은 점차 한 달에 한권이 되었고,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권으로 장족(長足)의 발전을 했다. 즉 꾸준한 습관으로 독서를 생활화 한 셈이다.
 
 어린 시절 두려움이고 장애라고 느꼈었던 책읽기가 이제는 자신과 불가분의 친구가 되었다. 그다지 학구적인 편이 못되어 아직도 두껍고 학술적인 내용의 책을 읽는 데는 인내력이 필요하고 진도가 잘 안 나가는 편이긴 하지만, 침대 머리맡에도, 사무실 책상에도, 차안에도 든든한 벗인 책이 항상 곁에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책이 지금은
욕심으로 혼잡할 때 텅 빈 마음을 갖게 하고,
가슴 시리거나 상처 받았을 때 덧나지 않게 싸매고 보듬어주며
허허벌판에 홀로 내팽겨진 듯 휘청거리고 스산할 때
자상한 나침판이 되어준다.
또한 언제라도 나를 반겨주는
준비된 친구이자
인생의 매니저가 된 것이다.♧



이수영  visionlks@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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