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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친구 1

음주가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술이 그립다.
그래도 애주가일까.
 
 흔히 혼자 있을 때 고독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지만 공감하거나 공유하지 못할 때의
외로움이 더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자신은 죽을 맛이라고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있는데 듣고 있는 건지 무반응이더니 말허리를 뚝 자르며, '난 운이 좋은가봐.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린다고.'고 말한다면 어떨까?
 가족이니까 맞장구라도 쳐주겠거니 하고 속상한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그깟 일 가지고 뭘 그러냐.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한다면 어렵게 꺼냈던 말들을 도로 주어 담고 싶을 것이다.
 
세상에 맑고 화창한 날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초여름 밤이었다.
불가항력적이고 너무나 벅찬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눈이 충혈 되었다.
맥주가 생각났는데 자정이 가까웠다.
누구를 부르기엔 적절한 시간이 아니다.
집에 다른 술은 있건만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맥주 특유의 부드러운 듯 화끈한 맛 때문일까
 
실내복 차림에 코트만 걸치고서 지갑하나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마트도 찻집도 닫았고, 카페에 아직 불은 켜져 있지만
곧 문 닫을 시간이다.
그런데 절실하면 해결책이 보인다더니
 
구세주처럼 눈에 띈 것은 ***치킨!
야식집인 양 불이 대낮같이 환한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무조건 들어가 생맥주 있냐고 하니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총각이 싹싹하게 ‘당근 팔지요.’ 라고 한다.
아, 다행이다.
안주로는 다른 게 없어 키친을 시켰다.
정신의 허기가 식욕을 돋우는 건지...
중간정도의 키에 체중이 100킬로가 넘지만
혈통 좋은 복슬강아지처럼 참으로 귀여운 모습을 가진 지인이 있다.
그는 '고기와 맥주다이어트'라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했는데
그날따라 충분히 수긍이 가면서 게걸스럽게 먹고 맛나게 마셨다.
맞아. 육체의 날씬함보다 정신의 건강이 우선이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오로지 먹는 일에만 열중하자.
스스로를 너그럽게 여기며 아주 그윽하게
치킨 서너 쪽에 생맥주 1,000cc정도 마시니 약간 취기가 돌았다.
 
세상에 맥주처럼 무던하고 너그러운 게 있을까
그놈이 몸에 적절히 들어가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세상일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누가 '술은 시인을 만든다.'고 말했던가.
잔뜩 힘주고 있던 중추신경이 적당히 이완된 상태가 되면
쾌적하고 창의력이 왕성해지는 모양
약간 취기가 돌면서 '이대로 죽어도 좋아.'라고 할 만큼 행복해진다.
'인생이란 부끄러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네.' 라는 독백과 함께
머릿속에는 벌써 참회록 비슷한 시를 쓰고 있었다.
 
삶이 너무 버겁구나!
극단적인 고통이 따를 때
삶보다 죽음이 안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이제는 알 것 같네.
 
살아있는 모든 건 순간의 갈증, 허기, 분노, 절망의 파노라마일 뿐
고통에 절어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지느니
오직 하나 산뜻한 선택을 하고 싶은 거니까
그냥 내려놓고 맡기면 망각의 늪에서 쾌적해질 테니까.
그러면 자유롭고 새털처럼 가벼워지리라.
..........
 
 마치 유서라도 쓰는 사람마냥 비장한 기분이 들면서, 치킨을 먹느라고 잠깐 그쳤던 눈물이 여름철 장대비처럼 또다시 사정없이 쏟아졌다.   칸막이 된 테이블에 파묻히듯 앉아 있어서인지, 음악소리 때문인지 주인은 손님의 오열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척이 없다.
 한참을 그러고 났더니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일까.'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 그랬냐싶게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물(눈물)은 물(맥주)로 다스린 것이다.
 
 사노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감정의 제어불능상태를 겪을 때가 있다. 또한 우울모드라는 게 특정한 사람의 일은 아니다.
 자신과 소통할 상대가 없고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자기 사정을 들어주기만 해도 자살률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직업적인 상담가가 아니라면 남의 어둡고 칙칙하거나 더러는 납득도 잘 안 되는 얘기를 무던히 들어주고 공감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을 다 키운 어머니는 새댁시절 출산과 육아의 고단함을 까맣게 잊듯이' 망각을 잘하는 우리 인간들은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면 그것은 남의 일이었던 양 다시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거의 꿈같고 드라마틱한 소망이지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거의 24시간 대기상태인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체할 수 없는 돌발사태가 발생할 때, 핸드폰 주소록이나 명함첩을 뒤져봐도 함께 있어줄 근거리의 동지가 냉큼 떠오르지 않는다. 또한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 지내는 친구가 있다지만 하필이면 그날따라 연락이 안 되거나 그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이럴 때는 '결국 이 찬란한 슬픔을 함께할 친구는 너뿐이야.' 라면서
음주가 일상적이지는 않아도 아주 가끔씩 술을 찾는 애주가처럼
언제라도 함께 있어줄 준비된 친구 하나쯤 불러내면 좋을 것 같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 절규하던 심신을 위무해주었던 맥주를 추억하면서... 언제라도 내 곁에 있어줄 그 친구가 눈물 나게 고맙고 든든하다.♧


이수영  visionlks@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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